(6월항쟁 30주년) 5월 없었다면 6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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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민의 힘으로
군사독재정권을 끌어내린
6월 항쟁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87년판 촛불혁명인
6월 항쟁은
사실 5월의 광주에서 출발했습니다.

김인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시위대에 대한 군 진압명령이 담긴
6월항쟁 당시 2급 군사기밀문서.

(c.g) 30년만에야 나온 이 문서에는
5월 광주에서 잔혹한 진압을 맡았던
7공수부대와 11공수부대를 다시 투입하는 등
전국에 특수부대를 보내는
전두환 정부의 명령이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5월과 달리 전국적으로 번진
시민들의 뜨거운 함성은
떨어진 진압명령마저 물리쳤습니다.

◀INT▶
노영기 교수/ 조선대학교
"첫째는 5.18의 경험이 크죠. 전두환 정권이 계속해서 국민을 학살한 정권이라는 비판 때문에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게 크고.."

80년 당시 철저히 고립된 채
피바다로 변했던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6월을 5월과는 다른 모습으로 만든 겁니다.

◀INT▶
유시민 작가/
"다른 지역이 다 들고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만 싸우다가 고립당해서 굉장히 큰 피해와 아픔과 고통을 겪었던 사건이거든요. 그게 7년 뒤에 6월 민주항쟁으로 확대되죠."

5월의 광주를 마음에 품어온 광주시민들은
7년만에 찾아온 6월 민주항쟁에서 역시
국민운동본부를 처음으로 꾸리고 앞장섰습니다.

◀INT▶
최평지/ 6월항쟁 당시 국민운동본부
"그때는 광주시민들이 워낙 협조적이니까
어떤 가게를 들어가도 다 숨겨주고 학생들이나 시위대가 들어가면 셔터를 다 내려버립니다. 상인들이.."

결실은 '6월'에 거두게 됐지만,
민주화에 대한 씨앗은
'5월' 광주에서 뿌려졌던 겁니다.

◀INT▶
최정기 교수/ 전남대학교
"5월이 국가폭력, 한국적인 권위적인 체제에 대한 저항의 출발이었다면 그게 권위주의 체제가 물러나고 형식적인 수준에서 민주 정부가 들어선 건 6월 항쟁이었고"

87년 6월과 최근의 촛불을 잉태한
5월 광주민중항쟁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
그리고 빛나는 쟁취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인정입니다.

◀ANC▶
◀VCR▶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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