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37주기22 [그의이름은]8 - 미국, 신군부 왜곡 정보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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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5.18 의 진실을 추적하는 기획보도,
오늘은 미국이
신군부가 왜곡한 5.18 정보에 기대
광주 시민이 아닌 전두환 씨를 선택하게 된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광주가 그렇게 철저히 고립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김인정 기자입니다.

◀VCR▶

(c.g) / 계엄상태였던 1980년 5월 19일.

미국의 컨트리팀은 전두환 씨와
계엄사령관, 최규하 대통령을 만납니다.

이때 군 수뇌부는 광주에 대한 편향된 정보로
미국을 설득합니다./

이때 뿐 아니라 전두환 씨가 실권을 잡고부터
벳시 전 주한미군사령관과
브루스터 당시 CIA 한국지국장 등을 통해
그와 긴밀히 접촉해온 미국.

미국이 광주시민이 아닌 전두환 씨를
쉽사리 선택한 건 왜곡된 정보 탓도 컸습니다.

◀INT▶
니콜라스 플랫/ 당시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
"제가 국방부에 있을 당시 전두환 씨와 사이에서 오갔던 대부분의 메시지는 존 벳시 합참차장이 담당했습니다. 저희는 벳시라는 전두환의 특별 창구를 하나 뒀던 거죠."

광주 상황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사온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만일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INT▶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만약 상황이 더 커졌다면 저희는 더 공격적으로 문제를 다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일이 그렇게 커지지 않았죠."

(c.g) 신군부로부터 받은 정보로
상황을 판단하던 백악관은 결국
군의 광주 재진입을 묵인하기에 이릅니다.

◀INT▶
팀 셔록/ 미국 언론인
"내 생각에 이 선택은 1953년에 있었던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최악의 실수 같다."

신군부의 왜곡된 정보전, 그리고
자국 안보에만 매몰됐던 미국의 결정 탓에 ...

당시 광주는 철저히 고립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광주 시민들은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INT▶
이해영 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
"(백악관에서) 자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전디는 말들이 광주시민들에게는 죽음으로 돌아온 것 아닙니까. 끔찍한 이야기죠."

MBC뉴스 김인정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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