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리포트10) 33년 전 오늘 "죽음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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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계엄군의 진압이 임박해있던 33년 전 오늘 이 시각, 도청엔 죽음을 뛰어넘은 숙연함과 광주를 지키겠다는 결기가 가득했습니다.

젊은이들의 아까운 목숨 살려보겠다고 광주의 어른들이 탱크 앞에 맞섰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시민들은 매일 궐기대회를 열어 광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불안감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계엄군이 도청에 재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소문이 돌았고 도청 앞 광장의 술렁임도 커져만 갔습니다.

도청에서 계엄군을 몰아낸 지 엿새째인 새벽 5시.(1980.5.26.월요일, 맑음. 낮최고기온 19.1도)

화정동에 계엄군의 탱크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접수돼 도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드디어 진압이 시작된 것일까.

불안해하는 시민들과 맞서 싸우겠다는 항쟁지도부를 진정시키며 홍남순 변호사 등 광주의 어른들이 일어섰습니다.

탱크 앞에 드러누워서라도 진압을 막겠다며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김성용 신부/'죽음의 행진' 대변인(화면 속 당사자)
"어른들이 총 맞으러 갈테니까 그 놈들이 쏘면 할 수 없지. 죽지 먼저. 우리가 먼저 죽을거야. 너희들은 여기서 끝까지 사수해라. 만약에 우리를 죽이고 여기에 오면 너희들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워라. 광주의 자존심을 지키고 싸워라."

계엄군은 일단 탱크의 머리를 돌려 돌아갔지만시민들 사이의 동요는 더 커졌습니다.

항쟁지도부는 마지막 순간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처음이자 마지막 외신 기자 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외신으로나마 기록을 남겨야 했습니다

윤상원 대변인이 기자회견에 나섰습니다.

(인터뷰)인요한/연세의료원 국제진료소장(당시 윤상원 대변인 통역)
"북을 향하고 있는 총이 왜 남을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상황이 어렵다.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고 물도 바닥나고 있고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 우리 매일 반공 구호를 외치고 시작한다. 그렇게 몰고 가지 마라. 억울하다"

오후 들어 도청 앞 광장 상공에서는 헬기가 소탕작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단을 뿌렸습니다.

(녹취)계엄군 선무방송/
"시민은 문을 열지 마십시오. 시민은 폭도를 숨겨주지 마십시오. 시민은 군 작전에 협조해 주십시오."

항쟁 지도부는 학생과 여성, 노약자들을 도청 밖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갔다 다시 도청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뷰)구선악/故 이정연씨(5.27 진압작전 때 사망) 어머니
"엄마 아버지 앉아보세요. 내가 할 말 있대요. 무슨 할 말이 있냐. 지금 나가면 안된다. 지금 나가면 죽는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 잡초를 누가 뽑을 것이요. 그러면서 우리가 피를 하나라도 흘림으로써 그 잡초를 뽑을 것이요. 그리고 콜라 한 병 마시고 그리고 나간 뒤로..."

윤상원 대변인은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중재를 요청했지만 글라이스틴 대사는 중재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계엄군은 자정을 기해 시내전화를 모두 끊었습니다.

시민군은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도청 안에 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부모 형제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들은 발길을 되돌리지 않았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편집 강성우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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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9) 33년 전 오늘 "미국을 믿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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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33주년 기획보도, 오늘은 미국이 80년 5월, 광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민들은 미국이 광주의 구원자일 것이라 믿었지만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철저한 외면이었습니다.

김철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 1980년 5월 25일에 작성된 한 광주시민의 육필 성명서입니다.(1980.5.25.일요일 비. (26.1mm) 낮최고기온 23.3도)

미국 7함대 항공모함 코럴시호가 이틀 전 부산항에 입항했으니 전두환 신군부가 물러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라며 용기를 내자는 내용입니다.

계엄군을 몰아내긴 했지만 살육이 언제 다시 재개될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여겼던 미국에 거는 기대감은 엄청났습니다.

(인터뷰)문순태/소설가(당시 전남매일 편집부국장)
"미군 군함이 부산으로 오고 있다는 대자보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야, 우리를 구출하러 온다' 이래가지고 얼마나 설렜는가 모르겠어요. 그래서 기자들도 굉장히 기대를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미국은 광주시민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5.18 직전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와 크리스토퍼 미 국무부 차관이 주고 받은 비밀 전문입니다.

미 정부는 전두환 신군부가 시위 진압을 위해 특전사를 동원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심지어 신군부에 지지 의사를 보여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대사(생전 인터뷰)
"제 생각에 그 사건(5.18)에 대한 미국의 책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국인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고 시위를 하던 학생들도 미국사람이 아닌 한국사람이었고 한국민을 상대로 사용된 군대도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었습니다."

미국 동의 없이는 투입할 수 없었던 전방부대인 20사단의 작전통제권도 신군부에 넘겨줬습니다.

미국은 신군부가 5월 27일 도청 진압작전을 펼 때도 신군부와 함께 작전 개시 일정을 협의했습니다.

(녹취)1988년 광주청문회/
정창화 민정당 의원:"미국하고 뭘 협의했다는 말입니까?"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
"광주진압작전이 장시일에 걸쳐 해결을 못한다든가 그 때 김일성의 오판이라도 있을까 해서 여기에 대한 대비 대책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미국과 진압 일정을 협의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 미국에 대한 믿음은 5.18을 거치면서 불신으로 바뀌게 됩니다.

도청이 진압된 이후 서울과 광주 부산의 미문화원에는 미국의 책임을 묻는 점거농성과 방화사건, 대학생들의 분신이 줄을 이었습니다. (1980.12 광주 미문화원 방화 1982.3 부산 미문화원 방화 1985.5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1985.12 광주 미문화원 점거농성 1986.4 서울대생 이재호, 김세진 분신 )

(인터뷰)정재호/조선대 민주화운동연구원 전임연구원
"5.18을 계기로 해서 드러나게 된 거죠. 확인되고. 미국의 양면성, 민주주의를 위해서 뭔가 역할도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국익의 차원,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었다."

광주 학살의 책임을 물어 전두환 신군부에게는 일부 단죄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학살을 방조하고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던 미국은 지금까지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편집 강성우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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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오늘 리포트8 - "누가 실제로 지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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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의 여러 풀리지 않는 의혹 중에 계엄군끼리의 오인사격처럼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33년 전 오늘 기획보도 여덟번째 순서, 오늘은 실제로 계엄군을 움직인 세력의 실체룰 알아보겠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은 5.18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군인들이 숨진 날입니다.(1980.5.24.토요일. 오후늦게 비(12.6mm). 낮최고기온 26.8도)

송암동에서 11공수 10명, 호남고속도로에서 31사단 3명 등 이날 하루만 13명의 군인들이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시민군과의 총격전이 아닌 계엄군 내 다른 부대 군인들과의 오인사격 과정에서였습니다.

같은 지휘 라인에 있는 군인들끼리 광주라는 좁은 작전지역에서 어떻게 하루에 두차례나 오인 사격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바로 지휘권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송선태/5.18 기념재단 상임이사
"외부에서 투입된 병력인 공수부대라든지 20사단, 그리고 향토사단이라든지 자체병력하고는 다른 통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또, 사용한 통신기기도 달랐어요. 예비주파수라든지 호출번호가 다 틀렸어요."

당시 광주지역 계엄군의 지휘권은 현재 장성 상무대의 전신인 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한테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식 지휘라인에 있지 않은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등 신군부 실세들이 수시로 광주에 내려와 진압작전에 개입했습니다.

황영시 차장의 경우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라고 지시했다가 현지 지휘관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지휘권자의 실탄 통제 명령은 현장 부대에 전달되지 않아 발포명령도 없는 발포가 잇따랐고, 공수부대는 발포를 하거나 양민을 학살하고도 이 사실을 상급부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녹취)한부환/서울지검 1차장(1995년 7월 18일 MBC 뉴스데스크)
"심지어는 시위현장 부근에서 구경하기 위해 나타나는 경우에까지 발포가 이루어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당시 실탄 및 사격 통제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두환 신군부가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계엄군을 움직인 실제 지휘권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5.18의 밝혀지지 않은 여러 의혹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지만 당시 군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편집 강성우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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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8) 33년 전 오늘 "누가 실제로 지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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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의 여러 풀리지 않는 의혹 중에 계엄군끼리의 오인사격처럼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33년 전 오늘 기획보도 여덟번째 순서, 오늘은 실제로 계엄군을 움직인 세력의 실체룰 알아보겠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은 5.18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군인들이 숨진 날입니다.(1980.5.24.토요일. 오후늦게 비(12.6mm). 낮최고기온 26.8도)

송암동에서 11공수 10명, 호남고속도로에서 31사단 3명 등 이날 하루만 13명의 군인들이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시민군과의 총격전이 아닌 계엄군 내 다른 부대 군인들과의 오인사격 과정에서였습니다.

같은 지휘 라인에 있는 군인들끼리 광주라는 좁은 작전지역에서 어떻게 하루에 두차례나 오인 사격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바로 지휘권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송선태/5.18 기념재단 상임이사
"외부에서 투입된 병력인 공수부대라든지 20사단, 그리고 향토사단이라든지 자체병력하고는 다른 통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또, 사용한 통신기기도 달랐어요. 예비주파수라든지 호출번호가 다 틀렸어요."

당시 광주지역 계엄군의 지휘권은 현재 장성 상무대의 전신인 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한테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식 지휘라인에 있지 않은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등 신군부 실세들이 수시로 광주에 내려와 진압작전에 개입했습니다.

황영시 차장의 경우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라고 지시했다가 현지 지휘관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지휘권자의 실탄 통제 명령은 현장 부대에 전달되지 않아 발포명령도 없는 발포가 잇따랐고, 공수부대는 발포를 하거나 양민을 학살하고도 이 사실을 상급부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녹취)한부환/서울지검 1차장(1995년 7월 18일 MBC 뉴스데스크)
"심지어는 시위현장 부근에서 구경하기 위해 나타나는 경우에까지 발포가 이루어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당시 실탄 및 사격 통제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두환 신군부가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계엄군을 움직인 실제 지휘권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5.18의 밝혀지지 않은 여러 의혹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지만 당시 군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편집 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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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오늘 리포트7 - "미궁의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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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때 계엄군은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저항 의사가 없는 고령의 노인과 만삭의 임산부,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조준사격으로 사살했습니다.

이 민간인 학살도 아직껏 그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도청에서 철수한 계엄군들이 광주와 화순을 잇는 외곽도로를 막고 차량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습니다. (1980.5.23.금요일. 구름많음. 낮최고기온 25.8도)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주남마을 앞 도로에서는 33년 전 오늘, 계엄군이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던 미니버스를 집중사격했습니다.

(인터뷰)신길순/농민(주남마을 주민)
"집에 오는데 냄새가 펄펄 나. 몇 명이 죽은 줄 몰라. 가마니로 덮어놨더만..."

무차별 사격으로 버스에 타고 있던 18명 중 1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3명이 살아남았지만 계엄군은 이 중 2명을 야산으로 끌고 가 총살시켰습니다.

(인터뷰)홍금숙/(주남마을 사건 유일한 생존자) 1988.9.1. 국회 광주청문회
"거기에 막 도착해가지고요. 좀 서 있는데 한 분이 내려오시더라고요. 좀 높은 사람 같았어요. 그 중에 높은 사람 같아가지고 뭐라 그랬냐면 "왜 귀찮게 데리고 왔냐" 그러면서..."

비슷한 일은 광주-나주 간 도로에서도 있었습니다.

주남마을 학살사건의 11공수가 송암동으로 이동하면서 무차별 사격해 저수지에서 놀던 10살 방광범군과 놀이터에서 놀던 13살 전재수군이 숨졌습니다.

(인터뷰)이강갑/당시 시민군,
"(군트럭) 15대에서 사방에 총을 다 쐈다고 자기 쏘고 싶은대로 다 쐈다고... 집 담벼락 안 맞은 데 없이 다 쐈어요. 내가 시간을 봤어 15대가 40분동안 쐈다고 총을."

21일과 22일엔 광주 교도소 인근 도로에서...

22일엔 광주 화정동 일대 주택가에 총을 난사해 68살 이매실 할머니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희생됐습니다.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최소 4곳 이상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시신들은 암매장처리됐지만 이 역시 피해규모가 어느정도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강성자/故 강복원씨 누나
"우리 엄마가 효천역 앞에 야산 있잖아요. 구덩이를 파 가지고 그 사람들이 구덩이에 어마아마하게 들어 있었대요. 그래서 (시신들) 얼굴에 페인트를 쫙 뿌렸대요..."

헌혈을 하고 나오던 박금희 양, 남편의 소식이 궁금해 거리로 나왔던 만삭의 임산부 최미애씨도 계엄군의조준사격에 숨진 대표적 민간인 희생자들입니다.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계엄군들은 당시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는지 정확한 통계치조차 없습니다.

앞으로 밝혀야 할 진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강성우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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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7) 33년 전 오늘 "미궁의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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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때 계엄군은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저항 의사가 없는 고령의 노인과 만삭의 임산부,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조준사격으로 사살했습니다.

이 민간인 학살도 아직껏 그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도청에서 철수한 계엄군들이 광주와 화순을 잇는 외곽도로를 막고 차량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습니다. (1980.5.23.금요일. 구름많음. 낮최고기온 25.8도)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주남마을 앞 도로에서는 33년 전 오늘, 계엄군이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던 미니버스를 집중사격했습니다.

(인터뷰)신길순/농민(주남마을 주민)
"집에 오는데 냄새가 펄펄 나. 몇 명이 죽은 줄 몰라. 가마니로 덮어놨더만..."

무차별 사격으로 버스에 타고 있던 18명 중 1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3명이 살아남았지만 계엄군은 이 중 2명을 야산으로 끌고 가 총살시켰습니다.

(인터뷰)홍금숙/(주남마을 사건 유일한 생존자) 1988.9.1. 국회 광주청문회
"거기에 막 도착해가지고요. 좀 서 있는데 한 분이 내려오시더라고요. 좀 높은 사람 같았어요. 그 중에 높은 사람 같아가지고 뭐라 그랬냐면 "왜 귀찮게 데리고 왔냐" 그러면서..."

비슷한 일은 광주-나주 간 도로에서도 있었습니다.

주남마을 학살사건의 11공수가 송암동으로 이동하면서 무차별 사격해 저수지에서 놀던 10살 방광범군과 놀이터에서 놀던 13살 전재수군이 숨졌습니다.

(인터뷰)이강갑/당시 시민군,
"(군트럭) 15대에서 사방에 총을 다 쐈다고 자기 쏘고 싶은대로 다 쐈다고... 집 담벼락 안 맞은 데 없이 다 쐈어요. 내가 시간을 봤어 15대가 40분동안 쐈다고 총을."

21일과 22일엔 광주 교도소 인근 도로에서...

22일엔 광주 화정동 일대 주택가에 총을 난사해 68살 이매실 할머니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희생됐습니다.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최소 4곳 이상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시신들은 암매장처리됐지만 이 역시 피해규모가 어느정도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강성자/故 강복원씨 누나
"우리 엄마가 효천역 앞에 야산 있잖아요. 구덩이를 파 가지고 그 사람들이 구덩이에 어마아마하게 들어 있었대요. 그래서 (시신들) 얼굴에 페인트를 쫙 뿌렸대요..."

헌혈을 하고 나오던 박금희 양, 남편의 소식이 궁금해 거리로 나왔던 만삭의 임산부 최미애씨도 계엄군의조준사격에 숨진 대표적 민간인 희생자들입니다.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계엄군들은 당시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는지 정확한 통계치조차 없습니다.

앞으로 밝혀야 할 진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강성우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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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순천시, 전남도 PRT 공무원 징계 뒷말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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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남도가 순천만 PRT 사업 즉
경전철 사업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에 대해 징계를 결정했는데요.

징계 수위는 경징계 수준이지만
경중을 떠나 공직사회 내에서
뒷말이 적지 않습니다.

김주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END▶
◀VCR▶
순천만 PRT 민자 유치 사업을 주도했던
순천시 공무원 4명에 대해
전남도가 징계 수위를 최종 의결했습니다.

행정 4급인 모 국장과
시설 6급 두명에 대해선 불문 경고,
행정 5급 모 과장에 대해선 견책 결정이
각각 내렸습니다.

전남도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대로
순천만 PRT 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업 시행자를 미리 포스코로 선정한 뒤
민자 유치 계획을 공고 함으로써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순천시는 전남도로부터
관련 징계 의결 문건을 수령하는 대로
소청 등, 행정 절차를 거쳐
대상 공무원들을 징계 처분할 계획입니다.
◀INT▶

하지만 순천만 PRT민자 유치 사업을 주도한
4명의 공무원들을 징계하는 데 대해
공직 사회 내 뒷말도 무성합니다.

순천시 역대 최대인 650억원 규모의
민자 유치 사업을 현실화 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공무원들을 징계하는게
과연 적절한 지 여부 때문입니다.

자칫 공직 사회 내 복지부동의 풍조가
다시 만연하지 않을 까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INT▶

순천만 PRT 민자 유치 사업과 관련한
지역 사회 내 논란은
이번 관계 공무원들의 징계로
일단락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게 됐습니다.

MBC NEWS 김주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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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투성 장애인 사업]37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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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광주 MBC가 연속 보도한장애인총연합회의 보조금사업 불법의혹 보도가 방송기자 연합회가 주는 9월의 방송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광주 MBC는 지난 달 7차례에 걸쳐 시 예산만 지원받고 시행하지않는 장애인 이동 목욕사업을 비롯해,
전문성없는 장애인 상담전화 등 광주 장애인 총연합회의 엉터리 사업을 집중 고발해 광주시가 감사에 나서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광주시는 최근 감사 결과광주 MBC가 제기한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됐다며보조금 회수와 함께 관련자 문책,
사업 중단 등의 조치를 내리고장애인사업이 보다 내실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심사평 보기-> http://reportplus.kr/?p=2160

관련기사로 바로가기

리포트1. "이동목욕차는 어디에?"


리포트2. "장애인총연합회, 불법수익사업 의혹"


리포트3. "불법투성 자판기 사업"


리포트4. "유령사업 수두룩"


리포트5. "일회성 사업엔 펑펑"


리포트6. "힘없는 곳엔 쥐꼬리"


리포트7. "허술한 관리 감독이 원인"


리포트7-1. "광주장애인총연합회 사과 성명 발표"


리포트8. "광주시 자체 조사 착수"


리포트9. "시민단체, 장총 특별감사하라"


리포트9-1."광주시 장애인총연합회 보조금 부당집행 확인"


리포트10. "광주시 조사 결과 의혹이 사실로"


리포트11. "장애인총연합회, 서류 조작 의혹 불거져"


리포트11-1. "장애인총연합회 내년도 예산도 과다"


리포트 11-2. "경찰, 광주장애인총연합회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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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의혹투성 장애인 사업9 - "시민단체들, 장총 특별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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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최근 광주 MBC가 보도한
장애인 총연합회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광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보조금 불법사용 의혹을 철저히 밝히라고
촉구했습니다.

한신구 기자의 보도

◀VCR▶

◀SYN▶
'모든 의혹을 규명해야한다. 규명해야한다'

광주 장애인차별 철폐연대 등이
오늘 광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조금 비리 의혹이 있는
광주 장애인총연합회에 대한
특별 감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장애인 이동 목욕과 자판기 사업 등
장애인 복지증진과 편의를 위한 사업들이
이름뿐인 사업으로 전락한 것은
광주시의 관리감독 소홀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INT▶
'알고 있었는데 힘없는 우리가 못했다. 시 책임

이에따라 이들은
비리 의혹이 있는 광주 장애인총연합회에 대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특별감사를 실시해
진실로 밝혀질 경우
보조금 환수와 처벌 등의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진보신당 광주시당도
보조금이 잘못 집행되고 있는데 대해
감독하지 않은 책임을
광주시가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엠비시 뉴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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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의혹투성 장애인 사업8 - 광주시 자체조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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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주 광주MBC가 보도한
광주장애인총연합회의 의혹투성 장애인 사업과
관련해 광주시가 자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경찰도 보조금 횡령 혐의가 있다고 보고
내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김철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명목뿐인 장애인 이동목욕사업, 전문성 없는 상담원이 배치된 장애인상담전화, 해마다 수천만원의 시 보조금이 투입되는 장애인총연합회의 사업들입니다.

광주시는 상당수 장애인 사업이 목적과 달리 집행되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 점검반을 꾸려 진상조사에 들어갔습니다.

4개반으로 조사팀을 구성하고 장애인 단체들에 지원되는 시 보조금 전반의 집행 실태를 조사하게 됩니다

(인터뷰)박형규 장애인정책담당/광주시 노인장애인복지과
"광주시 장애인 보조금 사업에 대해서 전반적인 점검을 실시해 문제점이 발견된 사업에 대해서는 행정적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번 조사는 광주장애인총연합회를 비롯한 시 보조금이 지원되는 광주지역 11개 장애인 단체, 38개 보조금 사업이 대상입니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보조금 회수와 함께 수사기관에 고발한다는 계획입니다.

광주 북구청도 점검반을 꾸려 지난 2008년부터 최근 4년간 장애인총연합회의 이동목욕사업에 대해 조사에 나섰습니다

광주경찰청도 장애인 단체의 시 보조금 횡령 혐의와 관련해 지난주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스탠드업)
이번에 진행될 광주시 조사가 제 식구 감싸기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환부 도려내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박재욱 기자

◀ANC▶
◀END▶
◀V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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